[Libération] Séoul au-delà de la k‑pop (2015.4.3)
프랑스 유력 일간지《리베라시옹》은 ‘서울 K-Pop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클럽들과 대형 기획사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도 성장하고 있는 인디 음악에 대해 보도했다.
“월요일부터 이렇게 생기가 넘치는 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리옹 야간 음악 축제 감독 ‘뱅상 카리(Vincent Carry)’는 지난 3월 서울을 방문하며 위와 같은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수도, 서울의 북동쪽에 있는 홍대는 잠을 자지 않는다. 주말에 수많은 젊은이가 홍대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원래 홍익대학교를 중심으로 시작된 홍대 거리는 지난 20년간 한국 인디 음악의 본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는 500여 인디 밴드가 이곳 홍대 거리에서 탄생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곳에서는 30여 개의 공연장이 촘촘히 들어서 매일 저녁마다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1990년대에 음악 산업과 관련된 이들(악기사, 녹음실, 음반 제작사, 음반가게, 클럽 등)이 홍대 주변의 작은 거리로 모이기 시작했다. 16년 전에 결성된 그룹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성기완’은 홍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뭔가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K-Pop에서 잘 드러난 획일성과 순응적인 태도를 거부하였다. 홍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컨셉이자 자세이다. 최근 홍대 지역이 큰 변화를 겪었음에도 아직도 이러한 정신이 남아있다.”
민주화를 거친 1990년대 중반 한국에는 펑크 바람이 일어나며 한국 인디락이 태동하게 된다. 미국 그룹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의 사망으로 시작된 인디락의 물결은 한국 그룹 ‘크라잉 넛’과 ‘노브레인’이 주도하며, 이들은 단숨에 한국 인디락의 대표로 떠오른다. 그리고 ‘크라잉 넛’과 ‘옐로우 치킨’이 제작한 1996년 작 “Our Nation”은 한국 인디 음악의 첫 번째 음반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인디 음악의 물결도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주춤하게 된다. 리베라시옹은 한국 음악 전문가 마크 러셀(Mark Russel)의 의견을 인용, “한국 록음악은 성장 중이었고, 당시 대형 제작사들은 인디 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대형 제작사들의 수많은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라고 언급했다.
< 홍대에서 공연 중인 러브 엑스 스테레오 >
프랑스와 한국을 연결하는 에이전시 대표 ‘샤를 추(Charles Chu)’는 “2007년부터 일렉트로닉 인디 무대가 홍대에서 점차 큰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신현중 성공회대 교수는 “2007년은 인디 음악의 두 번째 물결이 시작된 전환의 해” 였다고 평가한다. 그 해, 록밴드 ‘국카스텐’이 결성되고, 펑크 록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첫 번째 음반을 발표하였다. 다른 인디 밴드도 점차 인지도를 얻었고, 이들의 곡들은 광고나 드라마, 영화 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2007년에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 처음으로 시작되며, 현재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과 함께 한국에서 빠뜨릴 수 없는 록 페스티벌로 자리를 잡았다. 리베라시옹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 “2000년대 후반을 한국 인디 음악의 황금시대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8년, 한 무명 밴드는 ‘싸구려 커피’라는 노래를 통해 알려지면서 음악 차트 1위에 오르게 된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학교를 갓 졸업한 자신의 진부하고 불안정한 삶을 노래했는데, 이는 소위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던 젊은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같은 소속사였던 ‘브로콜리 너마저’도 큰 성공을 거뒀다. 신현중 교수는 “이 그룹들은 씁쓸하고 냉소적인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뿐만 아니라 새로운 음악적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인디 음악이 다양화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현중 교수는 “음악을 구매하는 이들은 주로 K-Pop을 좋아하는 청소년이다. 대학생들은 음반을 구매하거나 공연에 낼 수 있는 돈이 없다. 따라서 일부 인디 밴드는 한국팬 확보보다는 외국 팬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한국 음악 산업이 불법다운로드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은 아주 저렴한 가격의 무제한 음악 이용권 시스템 덕분이지만, 대기업 SK 텔레콤의 멜론과 같은 플랫폼은 음악인들에게 별 이익을 주지 못한다.”고 신문은 분석하고 있다.
여전히 듣기 쉽고,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며, 청소년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K-Pop과 같은 대중음악이 한국의 문화 산업을 대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록음악은 점점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YB밴드’는 2007년 텍사스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축제에 참가했으며, 3인조 록밴드 ‘아폴로 18’과 ‘아시안 체어샷’도 이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하지만 인디 밴드들이 음악만으로 삶을 유지하기에는 쉽지가 않다. 3년 전 EBS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헬로 루키상’을 수상한 ‘적적해서 그런지’는 인디 밴드 중 장래가 촉망되는 밴드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재정지원을 요청한 상태이다. ‘적적해서 그런지’는 올해 여름 유럽투어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자금 모집을 시작하였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 한다.”며 한숨을 쉬는 밴드 보컬의 모습에서, 획일화되고 몰개성화된 한국 음악 산업의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움이 앞선다.
※ 사진 및 자료출처: 《리베라시옹》
※ 번역 및 배포: 《KOFICE》
- 성명 : 지영호[프랑스/파리]
- 약력 : 아비뇽 대학교 문화 기획 및 문화 개발 전략 석사
프랑스 사회 문화 연구 기관 CERLIS 연구원
현재) 파리3 소르본 누벨 대학교 문화 기획 박사 과정